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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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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경남! 더 큰 미래로] 현장을 뛰는 사람들 ⑧ 우영준 한국야나세 회장

우영준 한국야나세 회장 10년전 출장경비 장부에 '깜짝'
선박부품기업으로 세계 순항… 키워드는 혁신·비전·문화

  • 기사입력 : 2014-10-2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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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영준 한국야나세 회장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위치한 회사 내 작업장에서 주력 제품으로 생산 중인 1만8000teu 라싱브리지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전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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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필요한 리더가 꼭 필요한 시대가 있다. 전쟁 때는 영웅이 필요하고, 국가와 지방경제가 어려운 시대라면 탁월한 CE0가 간절하다. 꼭 필요한 리더를 만나면 늘 반갑다. 그 사람 주변에는 활기가 넘치고, 생존의 희망과 삶의 향기가 용솟는다. 한국야나세 우영준(57) 회장. 우 회장은 조선·해양 기자재 제조, 플랜트 사업, 건설사업 등에 매진하면서 회사를 지속가능한 회사로 발전시켰다. 직원들에게는 미래비전을 제시하면서 희망을 안겨주고, 지역사회와 문화예술계에는 든든한 지원자로 환영받는다. ‘꼭 필요한 리더’ 역할에 매진하고 있는 우 회장을 만나 기업경영 철학과 지역밀착형 기업경영을 하게 된 배경,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이유 등을 취재했다.



    ◆정인·정도·정품에 사활 걸었다

    우영준 회장이 ‘한국야나세’라는 기업을 창업하게 된 것은 숙부의 권유로 일본으로 건너간 게 인연이 됐다.

    1985년 일본에 간 우 회장은 그해 4월 조선기자재를 생산하는 ‘일본야나세’에 입사했고, 1988년까지 3년 동안 근무하면서 공장장까지 지냈다.

    그런 우 회장에게 숙명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일본야나세가 태국에 공장을 지어 운영했지만 기후가 덥고 작업여건 등이 좋지 않아 태국회사 철수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우 회장은 일본야나세 CEO를 만나 “한국에서 ‘야나세’라는 명판을 걸고 물량을 만들어 보겠다. 내가 책임지겠다”는 야심을 밝혔다.

    이후 1989~1990년 2년 동안 한국과 일본을 드나들며 국내 조선시장 경기를 체크했고, 고향 마산에 공장 설립을 위한 탐색에 들어갔다.

    우 회장의 야심을 들은 일본야나세 CEO의 ‘OK 사인’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매사에 신중한 일본기업 CEO의 판단이 왜 그리 속전속결이었을까?

    그것은 우 회장이 일본야나세에 근무하던 1985~1988년까지의 본사 경리장부를 들여다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우 회장은 그 당시 1년에 1개월가량은 한국으로 출장와야 했다. 출장나오면 회사 경리부에서 출장비를 현금으로 지급했고, 우 회장은 그때마다 지출에 대한 정산을 해야 했다. 물론 정확하게 정산한 서류를 경리부에 제출했다.

    수년간의 정산서를 챙겨봐왔던 그 CEO는 금전처리에 매사 정직하고, 공장에 근무하면서 기술력도 탁월했던 ‘공장장 우영준’에 대한 판단과 결정을 늦출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우 회장은 “일본야나세를 그만둔 지 10년 후에 일본회사 관계자가 옛날 출장비를 정산했던 그 경리장부를 보여줘 소스라치게 놀랐다”면서 정인(正人)과 정도(正道)·정품(正品)을 사훈으로 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우 회장은 1991년 6월 고향 마산에 일본CEO가 80%, 우 회장이 20%의 지분 참여로 (주)한국야나세를 설립했다. 현재는 한국·중국 등에 10개의 법인을 경영하는 CEO로 활약하고 있다.



    ◆‘정공법’으로 경영위기 헤쳐나갔다

    한국야나세를 설립한 우 회장은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일본야나세에 조선기자재를 납품했다. 정인·정도·정품의 경영철학과 사훈을 바탕으로 한 기술력과 신뢰가 조선업계 전역에 소문나면서 1993년에는 국내 굴지의 조선사인 대우조선해양에서 납품을 조건으로 공장 증설을 요구했다.

    우 회장은 회사 기반이 잡혀가던 1996년 한국야나세의 일본 CEO 지분을 80%에서 10%로 낮추는 등 지분정리를 통해 명실상부한 최고 CEO로 등극했다.

    최고 CEO가 된 우 회장에게 찾아온 첫번째 시련은 대우조선해양이 요구한 공장 증설. 대우조선해양이 요구한 규모로 공장을 지으려면 총 46억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했지만 우 회장에겐 그 정도의 돈은 없었다.

    그때 기술신용보증기금에 근무했던 사촌형이 산업은행에 대출을 노크해보라고 권유했다. 당장 24억원이 필요했던 37세의 젊은 CEO는 30억원 규모의 ‘당찬 브리핑’을 산업은행 창원지점장에게 했다. 패기찬 젊은 CEO의 브리핑을 들은 지점장은 뭔가 확신에 찬 듯 서울 본점에 올라가 일주일 만에 대출승인을 받아 24억원이라는 거금을 내줬다. 이후 우 회장은 대출금 24억원에 회사자금 10억원을 보태 34억원 규모의 증축을 이뤄냈고, 또다시 10억원을 추가 대출받아 대우조선해양의 물량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공장을 짓게 됐다.

    공장을 짓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공장을 짓는 동안 기자재 건조 파트에서 근로자 3명이 사망했기 때문. 근로자 사망 소식을 들은 대우조선해양은 산재사망 사건의 여파를 우려해 한국야나세에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하기도 했다. 그때 우 회장은 사망자 유가족을 만나 진심어린 사과를 한 뒤 전폭적인 보상을 제시하면서 합의를 이끌어내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들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우 회장은 “위기가 수차례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솔직한 자세와 기술력, 회사의 비전을 무기 삼아 정면으로 돌파해 왔다”고 말했다.



    ◆조선소 인수, 혁신에 비전을 더했다

    우 회장을 비롯한 한국야나세 임직원들은 기업 설립 이후 지속가능한 회사의 비전을 함께 만들어 왔다.

    이 회사는 설립 때부터 지난 2000년까지 ‘헤치커버(갑판)’를 주력제품으로 생산했다. 헤치커버를 만들면서 고부가 제품으로의 교체를 위해 ‘라싱브리지(Lashing Bridge·컨테이너 고박장치 및 통로)’도 함께 만들어 왔으며, 2006년 이후부터는 라싱브리지로 주종목을 교체해 현재까지 생산하고 있다. 비전이 약한 헤치커버 시장의 한계를 미리 파악해 주종목을 교체한 것이다.

    이 회사 부설 기술연구소와 대우조선해양은 공동으로 2012년 더욱 견고하고 경량화된 세계 최초의 1만8000teu 라싱브리지를 설계·제작했고, 특허출원까지 했다.

    또 지난 2011년 혁신활동을 시작하면서 2013년을 도약의 해, 2015년을 성공의 해, 2020년을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되는 해라는 비전도 발표했다. 비전 발표 이후 매출도 꾸준히 올랐다. 혁신활동 첫해인 2011년에는 581억여원, 2013년에는 749억여원으로 껑충 뛰었으며, 2014년에는 8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회사는 더 큰 매출과 더 큰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해 6월 통영 삼호조선을 공매로 사들여 (주)한국야나세 통영조선소라는 명판을 붙였다. 헤치커버 제작→라싱브리지 제작으로의 변신과 함께 회사의 혁신적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조선소를 매입한 것.

    이 회사는 삼호조선이 70% 공정에서 그만둔 3만2000t급 벌크선 건조를 마쳐 지난해 12월 여수해양조선에 인도를 마쳤고, 30% 공정에서 정지된 3만2000t급 벌크선도 이달 말 모나코 선주사에 인도할 예정이다.

    특히 지난달 삼부해운과 3500t급 케미컬탱크를 계약해 오는 2016년 1월 인도할 예정으로 있으며, 앞으로 연간 10척 정도의 건조능력을 꾸준히 유지키로 했다.

    우 회장은 “조선소를 잘 경영해 오래도록 직원들과 비전을 나누고, 지역경제 발전에도 이바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고향 마산에 ‘명품 미술관’ 세우겠다

    우 회장은 사비를 들여 지역화가들의 작품을 많이 매입하고 있다. 자신에게는 큰 부담이 되지만 지역화가의 창작 열기를 응원하고, 또 우 회장 자신이 꿈꾸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작품 매입에 적극적이다.

    우 회장은 고향 마산에 세 가지 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한다. 그중 첫째는 시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고 전국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수 있는 ‘미술관’ 건립이다. 둘째는 노인들을 무료로 치료해 줄 수 있는 ‘병원’을 세우겠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돈 때문에 배움의 길을 접어야 하는 지역학생들을 위해 든든한 ‘장학재단’을 만들겠다는 목표이다.

    우 회장은 첫 목표인 미술관 건립을 위해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마산세관’ 건물과 부지를 눈여겨보고 있다. 그 계획을 안상수 창원시장에게 공식 제안하기 위해 면담도 희망하고 있다.

    우 회장은 “안상수 시장님을 지근에서 뵈니 창원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관심이 지대하셨다”며 “창원시에 기부채납된 마산세관 건물을 매각이든, 임대든 맡겨주면 지역미술의 정체성과 현주소를 보여주는 미술관을 책임지고 만들어 창원지역의 자랑거리가 되도록 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우 회장은 “마산세관 건물은 마산의 근현대사와 함께한 건축물로 역사적 의미가 높으며 지역의 역사적 건물을 부수지 않고 미술관으로 활용하는 것도 행정기관으로서 역사에 길이 남을 탁월한 결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꼭 필요한 리더로서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가슴 따뜻한 CEO로서 지역문화 창달에 헌신하고, ‘명품 미술관’ 건립 계획을 세우면서 더 큰 기부를 하겠다는 그에게서 경외심이 느껴졌다.


    -우영준 회장 약력= △1991년 (주)한국야나세 설립 및 대표이사 회장(현) △2000년 산업자원부장관상 수상 △2004년 도지사 표창 △2007년 한국산업은행 유망중소기업 선정, 마산상공대상 수상 △2009년 마산세무서장 우수납세자상 수상 △2012~2013년 국제로타리 3720지구 총재 보좌역 △2013년 경남메세나협회 문화공헌상 수상 △문화예술 4개 단체와 메세나 결연 지원(현) △창원상공회의소 부회장(현)

    조윤제 기자 ch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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