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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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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베이비부머의 인생 2막] 김 유통업 뛰어든 김상겸씨

잇단 사업 실패, 마지막 도전의 원동력 됐습니다

  • 기사입력 : 2015-05-10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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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겸씨가 창고에서 김 박스를 옮기고 있다./성승건 기자/

    “뜻한 대로 잘 안 되더라도 체념하지 말고 목표를 향해 가다 보면 노력한 만큼 나온다는 진리를 믿어요.”

    창원시 의창구 북면에서 김 유통업을 하는 김상겸(51)씨는 40대 후반인 48세에 이 사업을 시작해 올해로 3년째다.

    그는 천생 장사꾼이다. 젊은 시절 사업자 등록을 10여 차례나 바꿀 만큼 다양한 장사를 경험했다.

    30대 무렵 사업이 잘될 때도 있었지만 외환위기 이후 대부분의 사업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수록 사업에 대한 부담도 커져갔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움은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나이는 큰 변수가 아니다”고 말한다. 오히려 경험에서 오는 연륜이 조급함으로 달려왔던 젊은 시절보다 사업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인생 2막을 새롭게 여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는 것마다 안 됐다”

    김씨는 20대에 결혼과 더불어 일찍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 문구점을 시작해 가방가게와 의류점을 거치면서 수입이 괜찮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련의 정점은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칠 무렵이다.

    “계기를 마련해야 된다고 생각했죠. 의령 쪽에 비료공장을 인수할 기회가 생겨 뛰어들었는데 사기를 당했어요.”

    날벼락이었다. 김씨는 당시 심정에 대해 “바다에 뛰어들어 죽고 싶었다”고 했다. 피해 금액만 7500만원 정도였다. 배운 게 장사라고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빚을 내 호프집을 차렸지만 경영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수년간 고전 끝에 다시 사업을 접고 고깃집을 차렸다. 고깃집은 호프집보다는 장사가 조금 되는 듯했지만 또 시련은 찾아왔다. 아버지가 폐암에 걸려 장손인 그의 병원비 부담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버지는 지금도 약 처방에 의존해 투병 중이시다”며 “하는 사업마다 안 돼 굿판을 벌인 적도 있다”고 했다. 연이은 사업 실패는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고 수중에 남아 있는 돈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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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시작하겠다”

    벌이는 사업마다 고전하면서 힘들어하는 김씨에게 부산의 한 친구가 김 유통업을 제안했다.

    지난 2012년 1월께 그래서 시작한 것이 김 유통업이다. 그는 창원시 의창구 북면에 창고를 마련해 사업에 착수했다. 김 유통업은 투자비가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소비층이 다양해 자신이 있었다.

    “하루 몇 상자 판매는 고사하고 공치는 날도 많았어요. 적자의 연속이었죠.”

    김 유통업도 처음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김씨는 “영업이 관건인데, 거래처를 뚫기 위해 단가를 낮추다 보니 제 가격을 못 받고 팔기도 했다”며 “계속 사업을 해야 할지 고민도 많았다”고 했다.

    김씨는 다시 사업을 접자니 더 이상 자금 융통도 힘들었고 한마디로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는 ‘내 인생의 마지막이다. 종점을 찍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내가 숙이지 않으면 내 사람이 안 된다”

    40대 후반에 시작한 사업, 영업이 쉽지는 않았다. 거래처를 확보하기 위해 마트 등에 영업을 하러 가면 사장이나 직원들은 김씨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자존심을 굽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면전에서 “나가”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웃었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찾았다.

    김씨는 “어떤 마트는 수십 번도 더 찾아간 적이 있다”며 “꼭 김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저런 말도 붙이고 나를 알린다는 생각으로 찾아갔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거부했던 마트들이 하나둘 김씨에게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김씨는 “그렇게 찾아가니 정이 들었다”고 했다. 지금은 거래처가 100군데 정도 된다.

    김씨에겐 늦은 나이가 오히려 사업에 도움이 됐다. 그는 “젊을 때는 ‘하면 된다’는 의지로만 소위 ‘내가 나인데’라는 잘난 체하는 자존심이 셌던 것 같다”며 “젊은 시절 이 사업을 했다면 아마 다른 사업으로 바꿨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시절 사업 실패의 이유를 ‘끓는 냄비’에 비유했다. 김씨는 “젊은 시절에는 남들보다 더 성공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냄비에 물 올리듯, 금방 끓지만 또 금방 식었다”며 “그런 욕심과 조급함이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천천히 꾸준하게”

    김씨의 김 유통업은 지난해부터 매출이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현재 월 매출은 4000만원 정도다. 그의 꾸준함이 임계점을 넘어선 것이다. 거래처는 대폭 늘어 창원과 김해를 비롯해 경남 일대에 김을 유통하고 있다. 근무는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주 일요일은 쉰다.

    김씨는 요즈음 마음이 편하다. 매출 액수보다 그를 즐겁게 하는 인생의 재미를 깨달았다고 했다.

    김씨는 “너무 욕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며 “매출 액수가 올라가는 것보다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말했다. 늦게 시작한 사업이지만 천천히 꾸준하게 매출을 올리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젊은 시절 못다한 효도를 제대로 하고 싶다는 김씨는 새로운 청춘(?)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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