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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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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베이비부머의 인생 2막] 폴리텍대학 입학 손영대씨

61세에 ‘기계가공 기술자’를 꿈꾼다
현대로템 30년 근속 후 퇴직… ‘기계가공분야’ 천직이라 생각해 전문가 되려 폴리텍대학 지원
학생 신분으로 금형디자인과서 가공도면 그리기부터 응용까지 배우며 학업의 끈 이어가

  • 기사입력 : 2015-05-03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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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영대씨가 한국폴리텍대학 창원캠퍼스 베이비부머과정 금형디자인과 수업에서 CNC공작기계(머시닝센터)를 다루는 작업을 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모든 시작은 어렵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보다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그 길이 이끄는 곳은 어디일지, 선택은 옳은 것인지와 같은 두려움이 큰 탓이다. 이 두려움은 인생에 있어 첫 번째 시작을 겪는 이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두 번째, 세 번째의 시작에 나서는 이들에게도 항상 두려움이 따른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으로서의 시작은 결과를 알 수 없을 뿐더러 그 책임은 오롯이 선택을 한 자신이 져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 수십 년 만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인생의 절반을, 아니 어쩌면 절반 이상의 인생 1막을 마치고, 2막을 준비하는 ‘베이비부머 세대’다.

    근 40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손영대(61)씨는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군 전역 후 입사한 창원 진일기계에서 4년, 대한중기(현 현대위아) 3년을 거쳐 직전 직장인 현대로템에서 30년을 근속한 후 지난 2013년 만 59세의 나이로 정년퇴직한 그는 처음 17년은 보링머신이라는 기계가공분야를, 이후에는 철도차량 전기결선 일을 해온 현장기술자.

    그는 오랫동안 손에서 놓았던 기계가공분야가 자신의 천직이라는 판단 아래 20년 만에 다시 가공기계를 손에 잡으려 한다고 했다.

    회사생활 때부터 퇴직 후의 인생 2막을 구상했냐고 묻자 그는 “그랬으면 좋았겠죠”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랬다면 시작에 대한 자신감은 더 크고 두려움은 줄지 않았을까 싶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누구나 때가 되면 퇴직 후를 걱정하듯이 저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오전 7시에 출근해 어두컴컴한 밤 9시에 퇴근하는 일과 속에서 준비를 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퇴직 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와 같은 광고 문구처럼 기나긴 사회생활을 마치고 귀농·귀촌으로 휴식을 떠나거나 마련해 둔 자본으로 창업을 하는 베이비부머의 많은 주자들 속에서 그는 취직을 택했다. 손 씨는 “평생 해온 일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해본 적 없었습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라고 말했다.

    기계가공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손씨는 현재 ‘학생’ 신분이다. 한국폴리텍대학 창원캠퍼스의 베이비부머 과정에 지원해 지난 3월부터 금형디자인과에 재학 중.

    “10여 년 동안 만져온 기계지만 산업환경이 변하면서 기계도, 가공방식도 많이 진화했다고 느꼈죠. 익숙하면서 낯선 분야에 두려움이 서렸지만 현장에서의 경험을 사양시키기보다는 배움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가 한국폴리텍대학 창원캠퍼스 베이비부머 과정을 알게 된 계기는 언론매체를 통해서다.

    “이론과 현장에 빠삭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신문과 고용노동부 홈페이지를 통해 기능대학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취업률이 높아 어느 정도 취업이 보장될 것이라는 것도 한몫했어요.”

    또 이곳 기계과를 졸업해 취업에 성공한 아들이 들려준 학교 이야기도 영향을 미쳤다.

    “아들이 다닐 때부터 눈여겨봤죠. 아들 녀석이 취업길도 좋고 교수님들도 실력있다는 말을 자주 했었거든요.”

    방식은 다르지만 그가 비교적 익숙해하는 가공실무는 물론이고, 그에 앞서 가공도면을 그리는 것 등 기계가공에 필요한 기초지식이 수업의 주 내용. 손씨를 비롯해 기술자로서의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20명이 수업에 참여한다.

    그는 “현장에서는 그려진 도면으로 가공만 하는 정도였는데 수업을 들으면서 직접 가공도면을 그리고 코드를 기계에 입력하는 등 기초를 배우다 보니 기초에서 응용까지 전 부분을 배우는 것이 다릅니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취업을 위한 과정이라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기술을 더욱 심화시킨다는 의미가 크다는 그는 단순히 ‘학교’라는 것에도 만족감이 크다고 했다. 그 세대의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 자의 반, 타의 반의 짧은 학업 탓이다. 밀양에서 태어나 중학교 진학을 위해 가족들과 창원에 자리를 잡은 그의 학교생활은 거기서 멈췄다.

    “집안이 그렇게 넉넉한 것도 아니었고 당시는 고등학교 진학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집안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이 일 저 일 하며 생업전선에 뛰어들었죠. 젊은 대학생들과 학교를 다니면서 젊음도 느끼고, 그때 놓쳤던 학업의 끈을 다시 잇는 기분도 듭니다. 하하.”

    아침 9시에 등교해 하루 6시간씩 여느 학생들과 비슷한 일과를 보내는 그는 젊은 학생들 못지않게 건강관리도 열심이다.

    “현장에서 일하려면 건강관리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젊은 일꾼들 사이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뒤지지 않으려면 일단 건강해야죠. 또 어떤 환경에서도 체력이 받쳐준다면 헤쳐나가기도 수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일꾼들과 동등한 조건은 아니지만 이직률이 높은 20~30대 젊은 층보다는 오래 함께 일할 수 있는 인력을 원하는 중소기업이 늘어나고 있어 손씨와 같이 경륜이 높고 건강한 기술자를 찾는 수요도 높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살아왔습니다. 몸이 허락하는 한 내가 할 수 있는 기술로 일을 하는 것 또한 같다고 생각합니다. 100세 시대라고들 하는 것처럼 10년을 더 살지, 20년을 더 살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손에서 놓을 때는 아니지 않나요?”

    살아온 인생 3분의 2를 ‘현장 기술자’로 살아온 손영대씨가 꿈꾸는 인생 2막은 ‘기계가공분야 기술자’가 되는 것이다. 1막과 다른 게 무엇이 있느냐고 묻는 이도 있지만 그의 목표는 뚜렷하다. 단순히 일과에 치이는 일이 아닌 한 분야의 깊은 지식과 실력을 가진 전문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터득한 현장에서의 경험과 이제부터 터득하는 지식으로 전문가급의 수준을 갖는 것이 우선의 목표입니다. 제 능력을 배가시켜 취직하는 회사의 발전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뿌듯할 것 같습니다. 나아가 제 지식을 찾는 이가 있다면 그것이 학생이든 누구든 가르쳐줄 수 있는 것도 뜻깊을 것 같네요.”

    살아온 나날 못지않게 앞으로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그. 평생 땀 흘려 쌓은 지식이 남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꿈이라는 그에게서 인생 2막이란 짧지 않은 1막을 보내오면서 쌓아온 각자의 재산을 나누는 환원의 개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현미 기자 hm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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