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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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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베이비부머의 인생 2막] 이장된 전 부시장 이준화씨

욕심 내려놓고 고향마을 마당쇠로 새 삶
건강 악화로 군수 꿈 접고 41년 공직 마감
새롭게 꿈꾸자, 경남 Ⅱ

  • 기사입력 : 2015-03-0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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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인 거창군 주상면 내오리 오류동에서 이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이준화씨가 7일 오후 땔감용으로 사용할 나무를 지게에 지고 산에서 내려오고 있다./전강용 기자/

    “41년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제2의 인생을 준비하지 못했고 퇴직 후에 고향 거창에서 터를 잡고 살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만족합니다.”

    경남도 과장, 거창 부군수, 통영 부시장, 진주시 부시장 등 직업공무원으로서 최고 직위까지 올랐던 이준화(66·거창군 주상면 내오리 오류동)씨가 고향 거창으로 들어온 지 만 5년이 지났다.

    이젠 마을 이장까지 맡고 있다.

    어떤 이들은 부시장까지 지낸 사람이 마을 이장을 맡은 데 대해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는 주민들의 요구로 이장을 연임하고 있다. 마을 심부름을 맡아 할 수 있는 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내오리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고령화가 심각하다. 마을 주민의 평균 나이는 70세를 넘는다. 27가구에 45명이 사는 마을에서 그는 남자 중 두 번째로 나이가 어리다.

    “한때 거창군수에 출마하려고 했는데 이장을 한다고 하니 아내가 속상해했다. 하지만 일을 하려고 하면 이장도 할 일이 많다.”

    그는 현역 시절 기회가 있다면 거창군수에 출마하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러나 지난 2007년 발병한 ‘위장관 기질 종양’을 수술하고 나서는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2008년 6월 진주시 부시장을 끝으로 그는 41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퇴직 뒤 진해에서 몇 달 동안 동갑인 49년생 공무원 친구 10여명과 등산도 가고 골프도 치고 했지만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아내를 설득해 2009년 3월 진해의 집을 팔고 고향 거창으로 들어왔다. 아내의 반대가 있었지만 자신의 건강을 이유로 들어 설득했다.

    고향에는 논과 밭이 조금 있었지만 집은 새로 구입했다. 대지 87평에 건물 15평인, 시골에서도 비교적 작고 허름한 집을 900만원에 구입했다. 이후 아내를 위해 부엌과 보일러 공사를 하고 도정기 등 농기구를 일부 샀다. 여기에 모두 5000만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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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화씨가 집 뒤에서 땔감용으로 준비한 나무를 아내와 함께 옮기면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전강용 기자/

    “집 사는 데보다 고치는 데 더 많은 돈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새로 지어도 그만한 돈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현재 벼농사 600평, 과수농사 1800평(사과 농사 900평, 소득작물 900평)을 짓고 있다. 사과 농사로 지난해 1500만원의 소득을 얻었지만 그전까지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그는 3년간 고생만 하고 실패를 거듭했다. 콩 농사는 밀식으로, 도라지는 비닐을 씌우는 바람에 썩었고, 벼농사는 물을 많이 대 망쳤다.

    고향이었지만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마을 주민들과 거리가 있었고, 아내가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그는 주민들과 조금 더 빨리 동화하기 위해 눈높이를 맞추고 농사일을 배웠다. 처음엔 아내가 시골서 할 일이 없었는데 지금은 천연염색 취미생활을 하고 이웃과 사귀면서 잘 지내고 있다. 공무원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은 없지만 교통이 좋지 않은 시골이라 자동차 유지비와 경조사를 챙기는 데 상대적으로 돈이 좀 들어가는 편이라고 했다.

    거창은 도내에서 귀농·귀촌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풍광이 빼어나고 공기가 좋은 데다 무엇보다 교육여건이 좋아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귀농·귀촌을 꿈꾸는 사람에게 조언을 부탁하니 그는 “준비를 안 하고 오면 실패하기 쉽다. 처음부터 돈 벌려고 들어가면 100% 실패다. 농사는 여가로 하고 조금씩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부가 동시에 귀농이나 귀촌을 하면 성공 확률이 높다고도 했다.

    또 거창에는 사과농사를 많이 짓는데 과수원부터 덜컥 사면 후회할 수 있다고 했다.

    “사과농사를 쉽게 보면 안 된다. 기존에 하던 사람도 과수원 농사가 힘드니까 팔고 나가는 것이다. 또 하더라도 과수원에 과잉투자하면 안 된다.”

    집을 어떻게 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시골에 집은 있지만 귀하다. 마을마다 빈집이 있어도 팔려고 하지 않는다. 자식들이 앞으로 돌아오려고 하기 때문이다. 군에 신청하면 귀농·귀촌인을 위해 집을 빌려준다. 중간단계로 읍내에 아파트를 구해 사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12월부터 주민들이 마을총회 자리에서 ‘마을 이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한 것을 계기로 이장을 연임하고 있다.

    마을이장은 행정기관과 주민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 지시를 받고 주민에게 전달하거나,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내용은 군에 건의하고 사업도 신청해야 하는 등 잡다한 일을 해야 한다. 마을회의를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라고 생각하는 그는 마을 내 모든 대소사는 반드시 마을회의를 열어 먼저 보고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물어 결정했다. 그는 이장의 역할에 따라 마을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는 마을이장으로 마을이 보다 살 만한 곳으로 개선되는 모습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어느 곳이나 시골엔 젊은 사람이 없다. 마을단위 사업이나 마을기업을 하려면 젊은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오지 않는다. 시골에도 소득 있으면 젊은 사람들이 들어온다. 그래서 시골도 새로운 소득원을 창출해야 한다.”

    퇴직을 앞둔 공무원들을 위한 조언을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그는 공직을 떠났다면 자기가 근무했던 곳은 얼씬거리지 말라고 했다. 후배 공무원들이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공직자들은 주민을 위해 한평생 일했지만 한편으로는 국가로부터 혜택은 받은 사람들이다”며 “퇴직 후 기득권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봉사하는 자세로 제2의 삶을 사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이상규 기자 sk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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