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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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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예담] (22) 정두수 작사가가 거닐던 하동 ‘시오리 솔밭길’

어머니 손잡고 걷던 15리 길엔 노랫말들이…

  • 기사입력 : 2016-01-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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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두수 작사가의 고향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 성평마을의 시오리 솔밭길,


    <시오리 솔밭길> - 진송남

    ♬ 솔바람 소리에 잠이 깨이면/ 어머님 손을 잡고 따라 나선 시오리 길/학교 가는 솔밭 길은 멀고 험하여도/ 투정 없이 다니던 꿈같은 세월이며/ 어린 나의 졸업식 날 홀어머니는/ 내 손목을 부여잡고 슬피 우셨소/ 산새들 소리에 날이 밝으면/ 어머님 손을 잡고 따라 나선 시오리 길.

    (내레이션)무슨 자랑 같습니다만 화전민의 무남독녀인 나는 일찍 아버님을 여의고 홀어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시오리 솔밭 길은 산새 우는 호젓한 길이였지만 어머니와 학교 가는 나에겐 신념에 찬 길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6년 동안 결석한번 지각 한번 없었으니까요 꿈같은 세월은 흘러 난 모교에 교사로 부임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길에 어머니가 안 보이신 까닭은 이젠 제가 혼자서도 학교에 다닐 수 있기 때문일까요?

    ♪학교 가는 솔밭 길은 멀고 험하여도/ 투정 없이 다니던 꿈같은 세월이여/ 어린 나의 졸업식 날 홀어머니는/ 내 손목을 부여잡고 슬피 우셨소/ 산새들 소리에 날이 밝으면/ 어머니 손을 잡고 따라 나선 시오리 길.

    솔바람 소리는 아직도 여전한데 사랑하는 님(어머니)은 오간데 없습니다. 손잡고 걸었던 추억의 길을 더듬으며 한발 한발 발걸음을 내디뎌보지만 여전히 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뒤돌아서서 굽어진 솔밭길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립니다.

    ‘시오리 솔밭길’은 아련한 옛 추억이 묻어나는 길입니다.

    하동 출신 작사가 정두수(78)씨의 ‘시오리 솔밭길’(작곡 김준규·노래 진송남)이 된 배경은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 성평마을 앞에서 고하리 주성마을의 ‘하동읍성’과 재(고개), 범아리 율촌마을을 가로질러 고전초등학교에 이르는 15리(약 6㎞)의 길입니다.

    정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성평마을에서 산 너머 고전초등학교에 이르는 ‘시오리 솔밭길’.

    그 산길은 아이에게 멀고도 험했지만 어머니와 손잡고 걷던 아련한 추억이 작가에게 시심(詩心)으로 떠올랐겠지요.

    시오리 솔밭길은 노래의 주인공인 화전민의 무남독녀가 걸었던 길을 노래하고 있지만 실제는 그가 어릴 적 걸었던 추억의 산길을 배경으로 한 듯합니다. 이처럼 시오리 솔밭길은 어릴 적 우리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60~70년 전 시골마을 아이들이 책 보따리를 질끈 동여매고 걸었던 추억의 산길 ‘시오리 솔밭길’을 따라 걸어봅니다.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시오리 솔밭길’은 이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한적한 농로로 변했습니다. 일부는 무성한 풀숲이 길을 막아 옛길을 찾기조차 힘듭니다.

    하동읍성을 끼고 옛길을 찾아가는 길. 허물어진 옛성의 흔적들을 보며 세월의 흔적을 느낍니다. 내친김에 가던 길(솔밭길)을 잠시 벗어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하동읍성을 둘러봅니다.

    하동읍성은 문화재 발굴로 이곳저곳이 파헤쳐져 있지만 옛 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듬성듬성 보이는 주춧돌과 기왓장, 성벽 등은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합니다.

    국가사적 제453호에 등록된 하동읍성은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축성됐다고 합니다. 안내문에는 하동읍성은 현청과 민가를 보호하는 행정·군사적 중심지로 활용됐으나 숙종 29년(1703년) 하동현청을 진답면(현 하동읍)으로 옮기면서 기능을 다하게 됐다고 하네요. 읍성으로는 드물게 산성의 형태로 축조됐고, 양경산의 줄기에 형성된 골짜기를 감싸 안은 마름모꼴 형태이며 돌로 성벽을 쌓은 석축성이라고 합니다.

    자그마한 성으로 아담하고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아 겨울인데도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읍성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산은 낮은데도 풀숲이 우거져 솔밭길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전엔 솔바람, 산새들 우는 소리, 보리피리 불 때면 구름밭에서 종달새도 울었다는데…, 이제는 솔바람 대신 바람에 흔들리는 댓잎들의 소리만 가득합니다.

    가파른 언덕길을 지나 고갯마루에 이르면 넓지 않은 평지가 드러나고 이내 내리막길로 접어듭니다. 언덕 아래 율촌마을에서는 도심에서 보기 어려운 진풍경이 펼쳐지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정겹습니다. 마을 곳곳의 굴뚝에서 피어나는 하얀 연기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을 연상케 해 저녁만찬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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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초등학교

    한달음에 율촌마을을 가로질러 맞은편 숲속 작은 학교 ‘고전초등학교’에 이르면 알록달록한 학교외벽과 고목들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학교와 역사를 함께하는 벚나무는 1928년 9월 1일 개교 당시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기념수로 심었다고 전해집니다. 80여년의 세월을 버틴 나무는 군데군데 부러지고 껍질이 벗겨져나갔지만 아직도 그 당당한 위풍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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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두수 노래비 공원 .

    고전면 주성리에 자리 잡은 ‘정두수 노래비 공원’. 공원에는 정두수 선생이 작사한 노래비 ‘시오리 솔밭길’과 가수 나훈아가 불러 인기를 끈 ‘물레방아 도는데’가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노래비 ‘물레방아 도는데’ 뒤편에는 이 곡이 만들어진 가슴아픈 사연도 함께 새겨져 있지요.

    ‘세계 2차 대전 막바지 패전 위기에 몰린 일제는 조선학생들까지 사지(死地)로 내몰았다. 이 노래 ‘물레방아 도는데’의 작사가 정두수 선생의 숙부(정순식)도 그래서 남의 전쟁에 나간 것이다. ‘학병’이라는 띠를 두르고 생가마을 성평리를 떠나던 날 고향과의 마지막 작별 인사는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 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보며…, 손을 흔드는 것으로 꽃다운 젊은 날을 그렇게 마감했다. -이하 생략-.

    작사가 정두수 선생은 ‘하동포구 아가씨’, ‘물레방아 도는데’, ‘삼백리 한려수도’, ‘꽃잎 편지’, ‘목화 아가씨’, ‘감나무골’, ‘고향의 그 사람’, ‘하동으로 오세요’, ‘섬진강’, ‘지리산’, ‘아랫마을 이쁜이’, ‘긴 세월’, ‘섬진강 나그네’, ‘섬진강 연가’, ‘하동 사람’, ‘시오리 솔밭길’, ‘발꾸미 포구연가’, ‘자주댕기’, ‘노량대교’, ‘내 고향 하동포구’ 등 고향을 소재로 무려 67편에 이르는 하동 연가(戀歌)를 시와 노래로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민 인기투표 땐 기라성 같은 하동 출신의 정치·관료인들을 제치고 늘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고향사랑이 남달랐다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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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사가 정두수씨.

    그는 늘 자신이 유명한 작사가가 된 것이 따지고 보면 고향 ‘하동군’ 덕분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태어날 때 ‘삼포(三浦)’를 갖고 태어났는데 멋진 한려수도와 섬진강, 지리산 이 세가지를 알처럼 품은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가 자신의 고향이라고 늘 자랑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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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 인근 배드리장터문화회관 2층에는 ‘노래에 시를 담아낸 하동의 작가 정두수’와 ‘원고지에 대중의 애환을 노래한 시인 정공채’ 두 형제의 기념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기념관은 두 형제가 현대문학과 대중음악사에 큰 자취를 남긴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요.

    성평마을에서 고전국민(초등)학교로 이어지는 ‘시오리 솔밭길’은 이처럼 우리들의 삶과 애환을 품은 애달픈 노래입니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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