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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기자] 이슬기 기자의 영국 런던 편(1)

쇼팽의 부활, 조성진을 만나다

  • 기사입력 : 2015-12-01 13: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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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60년도 더 전에, 40세도 안 된 나이로 세상을 뜬 음악가다. 최근 이 쇼팽이 부활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

    맞다, 예상하다시피 만 21살의 피아니스트 조성진이다. 클래식 음반을 판매하는 풍월당에 쇼팽 콩쿨 실황 앨범을 사기 위한 줄을 서게 하고 일주일만에 5만장 전량을 팔아 팝스타 아델을 제치고 앨범판매 1위에 올랐다. 내년 2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쇼팽 콩쿠르 갈라 콘서트는 예매창구를 연 지 얼마되지 않아 전석 매진됐고, 팬들의 요청으로 추가 공연을 성사시키면서 국민들을 클래식 열풍으로 몰고간, 전세계 아이돌급 스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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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국립음악원에 다니고 있는 조성진, 깔끔한 연주와 뛰어난 해석으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쿨 1위를 차지했다. 표정과 머리칼이 압권이다.

    이런 조성진의 연주를 런던에서 직접 보고 왔다. 엄청난 행운의 시작은 우승자 인터뷰, '내달 런던 데뷔 예정'이라는 말 한 마디에서 비롯됐다. '뭐라고? 런던?' 귀에 쏙 들어왔다. 영국 출장 계획이 있어 혹시나 하고 뒤져봤더니 역시나다. 쇼팽콩쿨 홈페이지에는 우승자의 연주 스케줄이 친절히 나와있었고, 런던 연주가 열릴 곳을 안내했다.

    날짜는 11월 5일. 1일부터 6일로 이어진 출장일정과 딱맞아 떨어졌다. (어머, 이건 가야해!) 런던 사우스뱅크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7시 30분, 런던 필하모니아와 협연한다는 것이었다. 지휘자는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피아니스트에서 이제는 지휘자로 유명한 조성진보다도 훨씬 유명한 대단한 음악가라고 했다. (죄송해요 할아버지, 몰라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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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많이 비쌀 것 같지만 남은 좌석 가운데 가장 가격이 높은 건 42파운드. 한국돈으로 7만5000원 정도. 내년 2월 서울 예술의 전당 공연보다 쌌다. 런던 사우스뱅크 로얄 페스티벌 홀 홈페이지 가입을 하고, 좌석을 예매했다. 홀로 가니 한 눈에 봐도 좋은 좌석 한자리가 남아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무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고 해도, 결제창이 뜨지 않는다는 것. 마음이 급해졌다. 휴가라 다른 지역에 있어 컴퓨터도 없는 상황, 친구한테 데스크탑으로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또 실패. 결국 출장을 담당해주신 여행사 대표님께 SOS를 요청했다. 그 사이 좋은 자리는 나갔다.

    그 다음으로 좋은 좌석을 골랐다.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좋은 좌석을 안내해주는 'theater monkey(씨어터 멍키)'라는 사이트가 있어 대충 영어를 읽어가며 자리를 알아봤다. (이 노력으로 공부를 더 했으면…하지만 무조건 좋은 자리를 고집한 것은 실수였다. 피아노 연주를 주로 볼 것이라면 그에 맞춰 자리를 결정하는 것이 옳았다.) 결제를 마쳤다는 티켓 사진도 보내주시니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여행사 대표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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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티켓. 몇 시간을 투자해 구한 티켓인지. 기다려라 런던, 기다려라 조성진! 여행사 대표님의 공이 컸다.

    더 다행스러운 것은, 일주일 뒤쯤 클래식으로 유명한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조성진의 런던 공연소식을 올려 순식간에 남은 좌석이 매진되기 전에 예약했다는 것. 차분한 마음으로 예습을 하고 가기로 했다.

    살펴보니 프로그램은 피아노협주곡 1번. 쇼팽 콩쿨 파이널에서 연주한 곡이다. 조성진의 연주는 실황앨범이 나오기 전이라 유튜브 영상밖에 없어 대신 2005년 쇼팽콩쿨에서 2위없는 공동 3위를 한 임동혁 임동민 중 임동민의 연주를 들었다. (참으로 대단한 한국 청년들. 임동혁 피아니스트는 결선에서 협주곡 2번을 연주했는데 1악장을 마치고 나서 일어나 피아노 음이 이상하다며 조율을 요청했고, 정말 피아노 내에는 조율기구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큰 대회에서 실수가 있고, 조율사가 너무 태연하게 조율기구를 꺼내자, 입상 방해공작이라는 설도 있었다. 정작 임동혁은 최근 그 사건이 고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클래식을 너무나 모르는 나머지 집에 있는 책을 뒤졌더니 '금난새와 함께 떠나는 클래식 여행'이 나왔다. (집에 이런 책이 있었다니.) 대충 쇼팽 부분만 추려서 읽었다. 나머지는 느낌으로 충당하기로. 부푼 마음을 안고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고, 출장일정을 마친 뒤 드디어 공연날. 클래식 공연이니 신경써서 원피스를 입고 숙소를 나섰다.

    다른 곳을 들렸다 트라팔가에서 버스를 타고 런던 사우스뱅크까지 가려하는데, 뭔가 심상찮았다. 최근 IS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하면서 유명해진 국제해킹단체 '어나니머스(Anonymous)'가 트라팔가 광장에서 반(反)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백만 마스크 시위'를 벌인 것. 어나니머스와 혁명을 상징하는 가면 '가이 포크스'를 쓴 수백명이 트라팔가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버킹엄으로 가려는 시위대를 막는 영국 경찰의 수도 만만찮았다.(영국에서 참 많은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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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5일 영국 왕실은 런던 시민들이 모닥불(bonfire)을 피워 왕의 암살 모면을 축하하도록 했고 의회는 이 날을 아예 기념일로 지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로 이 날은 영국에서 '가이 포크스의 밤'으로 불리며 주민들이 모닥불과 함께 폭죽을 터뜨리며 대중들이 싫어하는 인물의 인형을 불태우는 일종의 축제일로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비오는 추운 날씨에 한참을 걸었다. 하루종일 걸어 다리가 아파올 때쯤 도착한 로얄 페스티벌 홀. 이미 사람으로 북적였다. 1층에서는 월드프레스포토전이 시민을 맞아주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오늘을 포함에 1년치 로얄 페스티벌 홀 프로그램을 팔고있었다.

    이윽고 눈에 들어온 건 도이체 그라모폰(DG)의 조성진 쇼팽콩쿨 실황 앨범. 한국에서는 6일날 발매예정인 앨범이니 영국에서는 5일 밤에 팔리고 있었다. 가격은 13파운드(2만3400원). 검색해보니 한국에서는 14000원 가량. 가격차이가 꽤 났지만 앞에 있는 안내판이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인터벌 사이닝!'. 인터미션 때 사인회가 있다는 말씀이시다! 세상에나. 눈 딱 감고 3장을 샀다. (나중엔 더 안 산게 후회가 됐다.)

    씨디를 달라고 부탁하는데 외국인 아저씨가 옆에서 말을 건다. '한국인인가요? 조성진도 한국인이죠? 대단한 피아니스트를 둔 게 자랑스럽겠어요.' 고개를 크게 끄덕여주고 땡큐를 연발해준 뒤 뿌듯한 마음으로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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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범 발매와 인터벌 사이닝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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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발매한 쇼팽 콩쿨 실황 앨범을 판매하고 있다.

    2500석의 거대한 공연장이 사람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필하모니아 단원들이 자리에 앉고 지휘자 아슈케나지가 무대로 걸어나왔다. 첫번째 곡으로 베를리오즈의 릫로마의 카니발릮을 연주했다. 잘 보이지도 않는 얇은 지휘봉 끝에 따라 선율의 강약이 왔다갔다하는 것이 느껴졌다.

    곡이 끝나고 드디어 피아노가 무대 가운데로 옮겨지기 시작하니 짝사랑하는 오빠를 만나기 전처럼 떨렸다.(조성진이 기자보다 어리지만 누군가가 '멋있으면 다 오빠'라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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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사우스뱅크의 로얄 페스티벌 홀 내부. 2500석으로 대규모 콘서트홀이다. 전석 매진된 이날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다. 공연장 내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지만 연주자들이 들어오지도 않은 때여서 한 장 찍었다.

    화면에서만 봤던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무대로 올라왔다. 런던 청중들은 열렬한 박수소리로 그를 맞아줬다. 4분여 넘게 이어지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이어 피아노 파트 차례.

    청명한 피아노 소리가 커다란 홀에서 또렷하게 울려퍼졌다. 아무래도 가장 많이 들었던 1악장이어서 친숙하기도 했다. 온 감정을 실으면서도 담백하고 정확하게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와 그가 집중하는 모습에 푹 빠졌다. 협주곡답게 조성진은 다른 악기연주자들과 끊임없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연주를 진행했다.

    피아노 파트가 아닐 때도 다른 악기연주자들의 모습을 보고 몸을 가볍게 흔들며 곡을 감상했다. 조성진을 보는 연주자의 이모미소, 삼촌눈빛을 확인할 때마다 흐뭇했다.

    1악장을 너무 멋진 포즈로 끝내버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그런 사람은 나말고도 더 있었던지 박수소리가 꽤나 많이 났다. (악장과 악장 사이에서는 박수를 치지 않는 게 에티켓. 2악장과 3악장 사이에서는 치지 않았다.) 조르주 상드와의 연애가 담겨 유명한 2악장, 3악장도 한 시간여를 피아노 치는데 눈 한 번 떼지않고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신기했다. 협주곡 연주가 끝나자마자 브라보가 나왔다.

    성공적인 런던 데뷔였다. 뜨거운 박수소리가 이어져서 조성진은 백스테이지에 들어가고 나오기를 4번 반복하다 5번째에 다시 피아노에 앉았다. 조심스레 건반을 눌렸다. 프렐류드(전주곡) 가운데 하나였다. 필하모니아 단원들까지 숨죽이고 지켜본 빗방울 전주곡(듣고 싶으시다고요?쇼팽 실황 앨범 트랙 15번입니다.)은 우아하게 공연장에 감겼다.

    개인적으로 피아노 소리가 더 또렷하게 절절하게 들려서인지 앙코르인 빗방울전주곡이 더 좋았다. 그날따라 비가 왔고, 비오는 런던과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솔직하게 빗방울 전주곡이라고 이름붙여졌고, 대중적이라는 곡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클래식에 문외한이었던 기자, 이렇게 하나씩 알아나가도록 하겠다.)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듯한 연주에 흠뻑 젖고 나자 연주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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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진, 10점 만점에 10점. 섬세하고 아름다운 연주를 하는 저 하얀 손가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인터미션이어서 재빨리 밖으로 나왔다. 사인회 장소를 탐색하는 순간 이미 길게 뻗은 줄이 보였다. 엄청난 인파가 몰려나와 세계적인 루키 피아니스트를 칭찬하고, 응원했다. 한국인들도 꽤 보였다. 나는 일단 줄을 서서 씨디 케이스 비닐을 뜯었다. 드디어 내 차례. 준비해간 초콜릿과 시집을 전달한 뒤, 나와 동생 이름을 적어달라고 부탁하며 씨디를 내밀었다.

    '연주 잘 들었어요!'. 주변 관객에 부탁해 사진도 찍었다. 너무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사인 씨디 3장을 내민 것도 미안해 사진을 급하게 찍은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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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줄을 기다려 사인을 받은 뒤에 공연장에 돌아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는데도 한참이나 줄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조성진의 인기를 실감했다.

    인터미션 뒤에 이어진 라흐마니노프를 듣지 않고, 조성진이 런더너들로부터 사랑받는 모습을 더 감상했어도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았다. 지난 10월처럼 언젠간 통영국제음악당 등 경남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남겨두는 편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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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일 성공적인 런던 데뷔를 마친 조성진 피아니스트와. 멋진 웃음을 가진 청년과 투샷을 찍으려니 떨려서 표정이 영. 다음에 경남에서도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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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사인을 받은 콩쿨 실황 앨범. 나와 동생이름을 부탁했다.(이렇게 착한 언니다) 가보로 간직하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만큼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미래가 빛나리라는 것이리라!


    한 번의 공연 덕에,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커져 28년 인생을 다 합쳐 간 클래식 공연수와 2015년 11월에 본 클래식 공연수가 비슷해졌다. 즐길 수 있는 음악의 범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아주 조금은 넓어지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조성진 덕분에. 땡큐, 조성진! 브라보, 조성진!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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