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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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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베이비부머의 인생 2막] 장애인 재활 돕는 황미화씨

약자 위해 뛴 전반전, 후반전은 약자와 함께 뜁니다

  • 기사입력 : 2015-04-1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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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안지역 유일한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위드에이블’ 황미화 원장이 작업장에서 장애인과 얘기를 나누며 종이봉투를 접고 있다./성승건 기자/

    함안군 최초이자 현재 함안서 유일한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위드에이블(칠원읍 유원리)’ 원장인 황미화(51)씨.

    쉰 살을 갓 넘긴 황 원장의 인생을 분해해 보면 길지 않은 시절이지만 사회적 약자의 재활의지와 희망을 선사해온 그의 인류애적 노력이 흥건하다.

    고향 칠원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인생 2막을 이제 시작한 그의 발걸음이 매우 힘겨워 보이지만, 그들에게 삶의 애착을 심어주는 헌신적 행보에 경외감이 든다.

    황 원장은 경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1기생(83학번)이다. 그가 사회복지와 인연을 처음 맺은 건 대학을 졸업하던 1987년 6월. 당시 마산시에서 직영한 마산시복지원의 상담원 공채시험에 합격하면서 부랑인과 가까이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주로 질병에 걸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 파산한 사람, 장애인 등 가정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 1980년대 중반에는 체계적인 사회복지 시스템이 없어 거리에는 많은 부랑인들이 떠돌아다녔다.

    당시 황 원장은 사회 밑바닥에서 처절하게 연명하는 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했다. 그는 초기 입소자와 기존 입소자의 재활상담을 통해 삶의 의욕과 복귀를 유도했다. 이들이 가정으로 복귀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도 파악해 행정기관·의료기관 간 연계해 문제를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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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던 황 원장은 결혼과 함께 복지현장을 떠났고, 그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것은 지난 2002년. 도내 한 장애인단체와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서 5년간 장애인들의 일자리를 찾아주고, 재활과 자립을 돕는 일을 했다.

    한번은 생산현장에서 산재를 당해 한쪽 눈을 실명한 25살의 젊은 청년이 상담을 원했다. 그는 눈이 불편해 계속 일하기 어려우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그때 황 원장은 청년의 성실성과 정직한 인성을 간파해 장애인 거주시설에 생활재활교사로 취업을 알선했다. 당시 그가 황 원장에게서 상담과 취업 알선을 받지 못했다면 그는 헤아릴 수 없는 절망에 빠졌을지 모른다.

    황 원장은 “몸이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장애인 직업의 중요성과 재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고 회고한다.

    2007년 7월. 그는 또 다른 세계를 노크했다.

    바로 경남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옛 경남창원여성희망일터지원본부·이하 새일본부).

    경기도 시흥에 이어 전국에서 경남에 두 번째로 설립된 여성 재취업 기관이다.

    새일본부는 지난 2007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촉진법이 제정되면서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같은해 7월16일 지원본부가 개소했고, 이곳의 직업상담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설립멤버로 입사해 사무국장으로 퇴직하던 지난해 7월까지 만 7년 동안 동료들과 경력단절 여성들의 재취업을 위해 온몸과 온 정신을 바쳤다.

    설립 초기 여성 재취업 관련 시스템과 인프라가 전혀 없어 칠흑같은 밤에 기어가듯 체계를 만들었다. 당시 각고의 노력으로 만든 ‘구인구직 데이터베이스와 사후관리 시스템’은 먼저 설립된 경기도 시흥 새일본부에서 벤치마킹하기까지 했다.

    그와 새일본부 직원들은 협업과 인화단결로 도내 여성의 실질적 취업통계수치를 변화시켜 나갔다. 그같은 노력은 정부의 경남도 여성취업 실적평가에서 가등급 평가를 수차례 받는 밑거름이 됐다.

    경남새일본부 정성희 본부장은 “황미화 전 국장님과 함께해온 지난 6년 6개월은 경남의 경력단절 여성 재취업의 개척기였고, 성장기였다”고 소개했다.

    황 원장은 새일본부의 정년을 10년이나 남겨 놓은 지난해 7월 고향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로 돌아갔다. 거기서 ‘위드에이블’이라는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을 세웠다. 평생 모아온 돈을 들이고, 그것도 모자라 빚을 내 장애인 10명을 보듬었다. 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들에게 웃음을 선물했다. 종이봉투를 접으며, 전자부품을 조립하며, 액세서리를 포장하며 세상사는 맛이 이런 거구나 하는 만족감을 안겼다. 그들은 매일매일 가야 할 직장이 생겨 좋았다. 집안에만 맴돌던 친구도, 동네에서 늘 따돌림 받던 친구도 이곳에서는 어엿한 직장인 대접을 받았다.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월급이 나왔다. 비록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첫 월급이 든 통장을 부모님께 선물할 때 느꼈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반신반의하던 부모들도 변화를 느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아이들의 표정과 의욕에 대만족이다.

    “서무립니다. 바다주세요(선물입니다. 받아주세요)”라며 내미는 그 통장은 곧 눈물받이가 됐다.

    그들은 황 원장과 함께한 지난 7개월 동안 직장에서 자아를 발견했고, 가정에서는 자존을 회복했다. 또 황 원장은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명문을 가슴에 새겨줬다. 동시에 부모들의 뇌리에 각인된 ‘걱정’이라는 단어를 지워줬다.

    지난 8일 방문한 그곳에는 활기가 넘쳤다. 마치 9월의 들녘 시원한 바람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의 밝고 맑은 표정이 그들에게서 오버랩됐다.

    “아! 이분이 원하는 게 이 일이었구나”하는 충격이 기자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때렸다.

    황 원장은 "아직 어려움이 많지만 함안군수님과 의회의장님께서도 행정적 관심과 지원을 보태주어 든든하다. 뿐만 아니라 차정섭 함안군수 부인인 이앵주 여사가 자주 들러 물품과 봉사자를 지원해 주고 있으며, 함안의 대표적 민간봉사단체인 삼칠고주모(고향을 생각하는 주부모임) 김정숙 회장님은 매월 회원 20여명과 함께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해주는 등 지역에서 관심을 가져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앞으로 우리 시설을 함안의 또 다른 자랑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취재 도중 황 원장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일기처럼 보이는 그의 노트가 보였다. 살짝 넘겨봤다.

    ‘최근 함안군과 군민, 지역단체에서 가야지역 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우리 시설도 이러한 사회적 노력의 일환으로 가야문화를 상징하는 물품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야문화를 대표하는 각종 문화적 상징물을 칠보공예를 활용한 장신구, 컵, 그릇, 토기 재현, 각종 기기 및 제품의 표면인화, 쇼핑백 인쇄 등 다각도로 검토한다. 늦어도 내년까지는 우리지역 문화를 상징하는 생산품을 만들 계획이다. 그러면 우리 장애인근로자의 일자리 확대와 소득이 증진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이곳에서 아웅다웅 삶과 희망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나의 인생 2막도 열정과 보람으로 채워질 것이다. 함께하면 가능한 위드에이블에서….’

    조윤제 기자 ch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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