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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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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명품 감 생산하는 강호등 씨

공들여 키운 감 덕에 내 인생 다시 빛납니다

  • 기사입력 : 2015-03-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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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동읍에서 강호등씨가 자신의 과수원에서 감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지난해 가을은 풍년이었다. 하지만 이를 기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경기가 나쁠 땐 풍년도 마냥 좋은 일은 아니다. 특히 감 농가가 큰 타격을 입었다. 얼어붙은 경기에 소비는 줄었고, 거기에 작황까지 좋아지자 감값은 곤두박질쳤다. 10㎏들이 한 상자에 1만원을 채 못 받는 농가도 나타났다. 하지만 다들 감이 팔리지 않아 아우성일 때, 감이 없어 못 파는 농가도 있었다. 창원 동읍 ‘햇살단감농원’. ‘물건’이라 소문난 그집 감을 맛보러 가봤다.


    ◆농사를 잘 짓는다는 의미

    창원시 의창구 동읍 노연리로 강호등(61)씨를 찾아갔을 때, 그를 만나러 온 사람들로 농원은 북적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감을 사러 왔고, 어떤 사람은 감나무 전정 작업을 부탁하러 왔단다. 그들은 기자에게 한목소리로 말했다. “강씨는 농사를 참 잘 짓는다.” 농사를 잘 짓는 게 무슨 뜻이냐 물었더니 “단위면적당 수입을 많이 창출해 내는 것”이라고 풀이해 준다. 그때 알았다. 무조건 많이 생산하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강씨네 농원에서 생산되는 15㎏들이 한 상자에는 감 40여 개가 들어간다. 보통 60여 개가 들어가는 걸 감안한다면 꽤 적은 편이다. 그만큼 감 한 알의 크기가 크고 실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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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동읍에서 명품 감을 생산하는 강호등씨./성승건 기자/


    ◆햇살이 곧 당도와 영양이 된다

    강씨네 감나무는 다른 집 감나무와 수형(樹形)이 조금 다르다. 흔히 떠올리는 감나무는 한복치마처럼 밑동으로 갈수록 가지가 많고, 밑으로 처지는 원추형인데 반해 강씨네 감나무들은 가지가 수평으로 쭉쭉 뻗어나가 끝이 하늘로 치켜 올라간 접시형이다.

    “나무 모양이 특이하다”고 하자 그는 빙그레 웃었다. 강씨는 15년 전, 농원을 매입한 뒤 과감하게 기존 가지들을 모두 잘라내고 새 가지를 육성했다. 가지가 서로 겹치지 않도록 전정 작업을 해 햇빛이 나무 전체에 고루 닿도록 한 것이 중요했다.

    “주위에서 미친 사람 취급을 했죠. 멀쩡한 가지를 다 잘라버리니까 농사 망치고 있다며 혀를 찼죠.” 하지만 3~4년 정도 지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새 가지에 전에 없이 크고 싱싱한 감이 하나둘 달리기 시작했다. 햇빛을 골고루 받은 감은 태양처럼 붉었고, 맛은 달았다. 그는 햇살이 곧 당도와 영양이 된다고 믿는다. 때문에 농원 이름도 ‘햇살단감농원’이라 지었다.


    ◆한 가지에 감 하나만 남긴다

    그가 일러주는 또 다른 비결은 1지1과(一枝一果)다. ‘가지 하나에 과실 하나’라는 뜻이다. 실제로 그는 가지 하나에 오직 감 1개만 열리도록 꽃을 솎아낸다. “감꽃이 피면 한 가지에 꽃 한 송이 남기고 과감하게 다 따버려요.” 여러 개에 분산될 영양과 맛을 오롯이 하나의 감에만 담뿍 담아내겠다는 고집이다. 그것은 실제로 감 하나하나를 전부 ‘상품(上品)’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일반 감 한 개 무게가 200g정도라면 강씨네 감은 290~330g에, 모양도 좌우대칭이 꼭 맞고, 빛깔 또한 옅은 다홍빛이 균일하게 퍼져 있다. 특히 보통 감의 당도가 평균 11브릭스(Brix)인데 반해 강씨네 감은 평균 16브릭스 이상이다.

    선진농법을 적극 도입한 것도 주효했다. 창원시농업기술센터가 우산형 지주 시범사업을 시작했을 때 강씨는 의심 없이 이 농법을 선도적으로 도입했다. ‘미쳤다’고 손가락질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슬그머니 강씨의 농법을 도입했다. 때문에 이 일대 감나무 수형은 대부분이 원추형이 아니라 접시형에 가까운 모습을 띠고 있다.


    ◆명품 감으로 인정받다

    강씨가 저온창고에서 감을 내왔다.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제철처럼 물이 차올라 있고 육질은 차돌처럼 단단하다. 표면에 칼을 대자 쓱쓱 뻗어나가는 질감이 경쾌하다. 살짝 녹은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있는 것처럼 진득한 당도가 느껴진다. 한 조각 씹어 보니 아삭아삭한 식감에 육즙이 풍부하게 돈다.

    그의 감은 지난 2013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주최한 ‘경남 친환경·국가인증 농산품 명품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경남 일대 내로라하는 감이 모두 선을 보인 품평회였고, 전문가 30명이 모양·크기·당도·식미 등을 평가했다. 그해 강씨의 감은 전 분야에서 극찬을 받았다.

    이후 품질관리원, 농촌진흥청, 농협에서 납품을 의뢰해 왔고, 고소득자를 겨냥한 친환경 명품 과일 브랜드 ‘이로로(iroro)’에 납품하는 유일한 단감농가가 되기도 했다.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거의 100% 직거래로, 10㎏들이 한 상자에 다른 농가에 비해 1만원 이상 더 받고 팔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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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동읍 노연리 강호등씨네 햇살단감농원의 감. 크기가 크고 육질이 좋고 당도가 높아 인기다.


    ◆감 농사를 짓기까지

    강씨는 현재 1만4850㎡ 과원에서 약 600그루 단감을 재배하는 전문 농업인이지만, 15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농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진주 출신으로 30대에 부산에 정착해 여러 사업에 손을 댔지만 실패했고, 먹고살기 위해 지인 밑에 들어가 타일 기술을 배웠다. 거기에서도 특유의 성실함을 발휘해 곧 두각을 나타냈고, 이후엔 아내 박영신(59)씨와 두 자녀와 함께 창원 동읍에 정착해 1980~1990년대 창원 일대에 불어닥친 개발 붐을 탔다. 성원아파트며, 대동아파트며 그 시절 신축된 창원시내 아파트 대부분의 타일 공사는 강씨가 도맡아 했다.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타일을 공급하면서 큰돈을 만졌다. 출퇴근을 하며 흔히 보게 되는 감나무에 관심을 가진 건 별다른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동읍엔 감밭이 많으니 일 그만두고 노후엔 감나무나 길러볼까 했어요.”


    ◆다시 햇살을 선사한 고마운 감

    감나무 밭을 매입해 농사를 익혀갈쯤 병마가 찾아왔다. 2009년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했다. 수술 후 80㎏의 건장하던 몸은 온데간데없고 비쩍 마른 몸의 초라한 사내만 남았다.

    ”밖으로 나가기도, 사람도 만나기 싫었죠.” 어둠을 헤매던 그에게 다시 ‘햇살’을 선사한 건 감나무였다. “조금씩 밖으로 나가서 감나무를 돌봤죠. 전정 작업도 다시 하고 농법도 배우러 가고, 그러다 보니 이만큼 오게 됐습니다”

    그는 지금부터가 인생 2막이라고 했다. 앞으로 10년 이상은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 실제로 암 투병 뒤 그가 생산한 감은 이전보다 더욱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다. 건강과 활력, 명성을 안겨다 준 감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기술도 나눠주고, 돈도 벌고, 기자양반도 찾아와 주니 부러울 게 없네요!”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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