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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비경 100선] 밀양 재약산 사자평

바람 연주에 맞춰 사뿐사뿐, 춤추는 억새

  • 기사입력 : 2014-11-2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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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약산 사자평 억새밭의 낙조. 붉은 노을빛이 억새밭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영남알프스는 영남(嶺南)의 지붕으로, 태고(太古)부터 수많은 사람을 비롯해 생물들을 그 넓은 품에 안고 삶을 이어왔다. 등산이 국민 스포츠가 된 몇 해 사이 수려하고 장엄한 산세로 산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영남알프스의 산들은 대부분 밀양 땅에 속하거나 걸치고 있다. 재약산과 천황산, 가지산, 운문산, 구만산, 억산, 능동산, 백운산이 바로 그것들이다. 밀양을 가히 영남알프스의 종주(宗主)로 일컬을 만하다.

    영남알프스의 한가운데 우뚝 솟은 재약산은 드넓은 사자평 고원을 머리에 이고 있다. 영남알프스 산군(山群)을 이루는 산들은 대부분 산줄기 곳곳에 넓은 평원을 갖고 있어 알프스의 고원지대를 닮았다. 비교적 날카로운 능선과 뾰족한 꼭대기로 이뤄진 일반적인 한국의 산들과는 지형이 좀 다른 것이다. 영남알프스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서도 재약산의 사자평 고원은 4.1㎢(약 120만평)에 이르는 광활한 평원이다. 워낙 넓어 백수(百獸)의 왕, 사자의 영토에 견줄 만하다고 해서 사자평(獅子平)이다. 사자평 고원은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억새로 뒤덮이는 것이다. 그 억새는 햇빛을 받아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은빛 물결을 이루다 황금빛으로, 그리고 회색빛을 띠기도 한다.

    최근 밀양 얼음골케이블카가 개설돼 억새밭을 구경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얼음골 주변 단풍이 일품이다. 활엽수가 많은 데다 단풍이 중부지방에 비해 늦게 들기 때문에 이달 말까지 계곡에서 산 능선까지 오색 물결을 이룬다.

    밀양 얼음골케이블카는 산내면 구연마을에서 진참골 계곡까지 1751m이다. 상부 승강장 (1020m 고지)까지 10분 만에 올라 능선에 닿는다. 국내에서 가장 긴 거리의 케이블카라고 한다. 3시간 이상 걸리는 등산이 힘들다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영남알프스 전경과 사자평 고원의 억새구경을 해도 좋겠다.

    상부 승강장에 내려 전망대까지 280m 정도 하늘정원 데크로드를 걸으며 동쪽에 펼쳐진 사자평 억새와 영남알프스 산군의 원경을 조망할 수 있다.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 전망대인 녹산대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케이블카 승강장이다. 이곳에서는 영남알프스의 연봉(連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좌측의 천황산과 재약산, 전방의 백호바위를 중심으로 한 백운산과 그 뒤에 좌우로 자리한 운문산과 가지산이 보인다.

    백운산 자락에서는 시례 호박소와 오천평반석, 천황산, 가지산 자락에서는 얼음골 등 밀양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얼음골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태고적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약 9917㎡ 되는 돌밭에 해마다 6월 중순부터 바위 틈새에서 얼음이 얼기 시작해 더위가 심해질수록 얼음이 더욱 많아진다. 반대로 가을철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얼음이 녹기 시작해 겨울철에는 바위 틈에서 얼음 대신 더운 김이 올라오고 계곡을 흐르는 물도 얼지 않는다.

    재약산 산허리에 있는 사자평에 도착하면 누구나 감탄을 금치 못한다. 사자평 고원의 억새가 특별한 것은 빛깔이 유난히 곱기 때문이다. 사자평 억새의 빛깔이 그렇게 고운 것은 고원을 지나 막힘없이 흘러가는 가을바람과 햇살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 까닭이다. 초가을의 어리고 여린 억새에서부터 다 자란 늦가을의 키 크고 억센 억새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자평 고원을 간단없이 훑고 지나가는 바람에 일제히 군무(群舞)를 춘다.

    그 군무의 억새밭을 시도 때도 없이 구름이 함께 뒹군다. 바람과 구름과 억새의 환상적인 공연이다. 재약산을 삼남금강(三南金剛)이라고 일컫는 이유 중에 바람과 구름과 억새가 한몫했을 것 같다.

    특히 가을 특유의 파란 하늘은 이곳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다. 9월부터 피기 시작하는 억새는 단풍보다 먼저 가을을 알린다. 억새는 단풍보다 일주일 정도 이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도 볼 수 있지만, 시기를 잘 맞춘다면 오색 빛깔의 단풍과 금빛 억새평원의 풍요로운 조화를 느낄 수 있다. 또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 노을이 만들어내는 황금빛 억새평원도 진풍경이다. 광활하게 펼쳐진 억새평원이 바람에 출렁이는 모습은 마치 바다를 연상케 한다.

    그 꿈결 같은 억새밭 한 귀퉁이의 고사리마을에는 사람들이 살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등산객들에게 민박을 제공하고 음식을 파는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는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조그만 학교가 있었다. 이름도 앙증맞은 산동초등학교 고사리 분교였다. 바람과 구름과 억새를 동무 삼아 고원을 헤집고 다녔던 고사리 분교 아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나이 들어가고 있을까. 아마 지금도 꿈속에서 광활한 사자평 억새밭을 뛰어다니지 않을까. 구름 속에서, 또 바람 속에서….

    재약산에는 주저리주저리 전설이 열려 있다. 그중에 신라의 어느 왕자가 이 산의 샘물을 마시고 고질병이 낫자 그 자리에 절을 세우고 영정사(靈井寺)라 이름 지었고, ‘약이 실린 산’이라며 재약산(載藥山)이라고 불렀다는 얘기가 있다.

    일제는 금수강산 조선의 아름다운 산 곳곳에 자신들의 왕인 ‘천황(天皇)’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한때 ‘우리 이름 되찾기’ 운동이 벌어졌고, 그때 재약산과 천황산을 통합해 재약산이라고 부르기로 했으며, 천황산의 정상부였던 사자봉(1189m)을 재약산의 정상으로 삼았다. 원래 재약산의 정상은 수미봉(1018m)이었다. 재약산 수미봉에서 사자봉에 이르는 길목에 있는 천황재는 억새가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수미봉에서 사자봉, 능동산, 신불산을 잇는 산길에는 ‘하늘 억새길’이라는 예쁜 이름이 붙었다. 하늘 억새길의 군데군데에는 사람의 보폭 간격으로 나무토막이 깔려 억새밭과 숲을 보호하고 있다.

    고비룡 기자·사진= 밀양시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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