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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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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베테랑 화재조사관 최준식 소방장

불길 휩쓴 자리 원인·피해 밝히는 ‘화재현장의 CSI’

  • 기사입력 : 2014-09-0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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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재조사관인 창원소방서 화재조사계 최준식 소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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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준식 소방장이 화재출동 전 장비를 확인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오전 10시께 거제시 고현동 현대자동차 사거리 인근 N사의 물품창고에서 화재가 발생, 1시간 50분 만에 진화됐다. 이 화재로 소방서 추산 1억원 상당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도대체 1억원 상당 재산피해는 어떻게 산정되는 것일까? 또 누가 피해금액을 계산할까? 바로 ‘화재조사관’이다.

    창원소방서 화재조사계에 근무하는 최준식

    (43) 소방장은 올해로 11년째 화재조사를 전담하고 있는 베테랑 화재조사관이다.

    지난 98년 대학을 졸업한 최 소방장은 산업용 폭약 관련 회사에 취업했다. 자신의 대학 전공인 ‘화학’을 살린 것이다. 이곳에서 4년간 전국 공사현장을 다니며 각종 발파 일을 맡았다. 터널을 뚫기도 하고 각종 공사현장을 누볐다. 군대에서도 EOD(폭발물처리반)에 복무했다.

    전국을 떠도는 생활이 힘들었던 최 소방장은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소방에 입문했다. 소방공무원 공채 시험에 합격한 것이 2002년, 그의 나이 31세 때였다.

    군대와 첫 직장에 이어 소방공무원이 되면서도 그의 전공은 십분 활용하게 됐다. 상사의 권유로 화재조사계에 배치된 것이다.

    소방방재청은 지난 2005년부터 화재조사관 자격시험을 치렀고, 최 소방장은 1회 합격자다. 지난해부터는 소방방재청과 별도로 정부기관에서 화재조사감식 기사 자격시험을 치르고 있다.

    최 소방장이 근무하는 창원소방서에는 3명의 화재조사관이 있다. 3교대로 사흘에 한 번씩 근무를 한다.

    흔히 생각하면 화재조사관은 화재가 완전히 진압된 후 현장에 들어가 조사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화재조사 업무는 신고접수와 동시에 시작된다. 현장에 도착하면 화염의 형태나 번지는 정도, 속도 등을 종합적으로 가늠해 전기가 원인인지, 다른 인화물질 때문인지, 화학적인 화재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진압이 끝나면 곧바로 현장에 들어간다.

    “불이 꺼졌으니 안전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유독가스가 많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차라리 화염이 있을 때가 더 안전할 때가 있죠.”

    화재조사관의 업무는 크게 원인조사와 피해조사로 나뉜다. 화재조사의 가장 큰 목적은 예방이다. 화재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함으로써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고,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면 정책에 반영하고자 하는 것이다.

    “가정집에 불이 났습니다. 전기장판이 많이 탔죠. 조사해보니 역시 전기장판이 화재 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전기장판이 원인이라고 밝히면 또 곤란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멀쩡한 중소기업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 조사는 엄밀히 해도 언론이나 외부에 그 원인을 밝히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김해의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불이 났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대피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생명을 잃었다. 최초 원인은 플라스틱 휴지통에 버린 담배꽁초로 지목됐다. 그러나 조사를 해보니 실제 화재원인은 화목보일러 과열로 인한 사고였다.

    “담배와 관련된 일화가 또 있습니다. 가정집에서 불이 났는데 자녀가 화상을 크게 입었습니다. 그런데 조사해보니 담배꽁초가 원인이었죠. 가족 중의 누군가가 담배를 피웠을 텐데 자기 때문에 자녀가 화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면 자괴감이 엄청나겠죠. 보고서에는 원인을 적었지만, 가족들한테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화재가 방화 같은 범죄와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경찰에 맡기고 화재조사관은 철수한다. 이후는 경찰 과학수사대와 강력수사팀의 몫이다.

    “회사 화재의 경우 부주의로 결론이 날 경우 해당 직원이 해고되는 등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원인 조사는 언제나 조심스럽습니다. 신중하고, 정확하게 그러나 신속하게 해야 합니다. 나도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피해조사도 어렵긴 매한가지. 화재 피해자들이 한결같이 제기하는 불만은 피해액이 턱없이 적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금액 산정은 어떻게 이뤄질까?

    “물어보죠. 물건을 언제 얼마에 샀고, 어느 정도 사용했는지. 그리고 현재 가격에 감가상각률을 적용하고, 불에 탄 물건 처분 비용까지 더합니다. 골동품과 동식물은 별도의 평가액으로 계산합니다.”

    “물론 쉽지 않죠. 물건의 주인인들 불에 탄 자기 물건의 현재 가치가 얼마인지 알고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매뉴얼이 필요합니다.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과거에는 선임 화재조사관이 남긴 이른바 ‘족보’가 있었다. 지금은 그동안 화재조사관들의 경험을 고스란히 담아낸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있다.

    “원인조사든 피해조사든 쉬운 일은 없습니다. 소방관이 뿌리는 물의 압력이 워낙 세다 보니 남아있는 게 별로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물건을 주워다가 최대한 원상 복구시킨 후 최초 발화지점이나 화인, 피해액을 산정해야 하죠.”

    조사가 끝나면 그때부터 또 어려운 일이 시작된다. 보고서다. 보고서 1건당 8~10종류 관련 서류가 첨부된다. 이렇게 조사가 끝나면 전용 프로그램에 데이터를 입력한다. 원인별, 시간대별, 피해금액별 화재 통계를 볼 수 있는 것도 모두 화재조사관의 조사와 보고가 있기 때문이다.

    그에겐 직업병이 있다. 집에서 나올 때면 멀티탭을 찾아 전원을 다 끈다. 냉장고 외에는 모든 전원을 차단하는 게 습관이 돼 있다. 가스도 중간밸브까지 모두 잠근다.

    “화재 현장의 공통점은 정리정돈이 안 돼 있다는 겁니다. 공장이라면 집기나 공구, 가정이라면 각종 전기기구와 가스밸브 등 정리정돈만 잘해도 화재를 막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화재 원인이 있지만 결론은 사람의 실수가 가장 크다는 것입니다. 지난 11년의 화재조사에서 얻은 가장 큰 경험이죠.” 

    글= 차상호 기자

    사진= 전강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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